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사와 미츠하루 (문단 편집) === [[프로레슬링 NOAH]] === 하지만 자이언트 바바의 부인 바바 모토코와 갈등이 불거진다. 개혁을 꿈꿨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보수적인 바바 모토코와 사이가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 미사와 미츠하루의 죽음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유명한 레프리이자 미사와의 둘도 없는 지인인 와다 쿄헤이는 "모토코씨는 미사와씨가 경영에 미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영의 부분은 본인이 맡으려 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미사와 미츠하루가 프로레슬링 NOAH로 시대의 흐름을 개척하며 순항할 정도로, 경영이 나쁘지 않았다. 도쿄돔 단독흥행을 단체 개양 4년만에 그것도 무토 케이지를 불러서 할 수 있는 단체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하게 큰 비용을 지불했지만 정작 일본인 선수는 푸대접하는 등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문제점[*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의 탈단을 배신으로 보던 [[점보 츠루타]]도 사정을 듣고나서 "미사와군의 심정을 알겠구만."이라고 할 정도였다. 점보 츠루타는 사망 전까지도 미사와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굉장히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톱 [[무토 케이지]]의 1/3도 안되는 대전료를 받으며 온갖 살인기는 다 맞고 다니던 미사와 미츠하루였다.]을 자이언트 바바의 수완으로 애써 억눌렀지만[* 자이언트 바바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탑일 때부터 있었던 일인데, 바바의 인망과 카리스마를 믿고 젊은 선수들이 따라왔기 때문에 단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바가 사망하고 미사와 미츠하루와 바바 모토코가 반목하면서 곪았던 문제들이 터졌다. 미사와 미츠하루는 2000년 6월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난 후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단체를 만들고자 했는데, 자이언트 바바와 점보 츠루타 사망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 선수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였던 미사와가 탈단을 결심하자 수많은 선수들이 뒤따라왔고, 이는 프로레슬링 NOAH(プロレスリング・ノア)라는 새로운 단체의 창단으로 이어진다. 정작 절친한 후배였던 카와다 토시아키는 미사와 미츠하루를 따라 전일본을 탈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불화설부터 시작해서, 카와다가 바바 모토코 부인의 편이었다거나 2인자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는 등 온갖 루머가 있었지만 그 진위는 불명이다. 훗날 카와다 토시아키가 2005년 7월 18일에 프로레슬링 노아에서 다시 한 번 미사와 미츠하루와 경기를 벌이지만 이 한 번을 제외하고는 미사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카와다는 단 한번도 노아의 링에 오르지 못했다. 경기 이후 카와다 토시아키가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어필을 하는 마이크워크를 했는데, 평상시 미사와가 이런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지라 결국 폭발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지만 정작 카와다는 미사와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노아는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미사와 미츠하루 등 거물급 선수들과, 아키야마 준을 비롯한 신예 에이스, 그리고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등 젊은 주니어 헤비급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이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여 최단시간(4년) 도쿄 돔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프로레슬링 NOAH는 데이브 멜처 뿐만 아니라 일본 내 프로레슬링 매체에서도 호평할 명경기들을 양산했는데, 미사와 미츠하루도 두 번 GH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내면서 수많은 명경기들을 뽑아냈다. 당시 가장 유명한 경기는 2003년 3월 1일 일본 무도관에서 펼친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인 對 코바시 켄타전으로,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3년 올해의 경기에 이름을 올린다. 하지만 세대교체에 계속 실패하면서 몇몇 유명한 선수들이 장기간 정상에 군림하며 팬들은 식상함을 느꼈고, 코바시 켄타의 부상 및 새롭게 밀어주던 [[리키오 타케시]]가 막장행보를 걸으면서 차츰 기세가 수그러든다. 이미 ~~골병~~ 몸 상태가 상당히 나빴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몇번이고 선수 일선에서 물러나려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다. 2006년말에 자신이 다시 한 번 나서서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지만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 기량을 보였다. 그럼에도 상대 피니쉬 무브를 모조리 킥아웃하고 승리를 따내는 모습에 팬들은 질타를 쏟아내며 급기야 독좀비라고 농담처럼 비꼴 정도였다. 1년 넘게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 활동할 때 2007년 친구에게 "이제 은퇴를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아키야마 준]]은 당시를 회상하며, 힘들단 소리 한 번 않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요즘은 좀 힘들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버거워했다고 인터뷰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버텨서 당시 미국 ROH에서 10개월 이상 승승장구하던 [[모리시마 타케시]]한테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넘겨주고 다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모리시마 타케시 역시 기대 이하의 기량을 펼친데다 뜬금없이 [[WWE]]에 진출한다는 말을 꺼내고는 진짜로 WWE에서 다크 매치를 치루는 등 계속 상황이 꼬인다. 결국 GHC 헤비급 챔피언 벨트는 켄스케 오피스[* 프로레슬링 단체라기보다는 선수 육성 도장으로, [[사사키 켄스케]]의 부인인 [[호쿠토 아키라]]가 사장으로 있다. 다이아몬드 링으로 개칭한 후 규모는 작지만 켄스케 오피스 시절부터 있던 자체 흥행도 꾸준히 개최한다.] 선수인 [[사사키 켄스케]]한테 넘어가고, 프로레슬링 노아는 2007~2008년 내내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